남편과 아내의 산후 우울증 들여다보기
때론 삶을 통째로 집어삼켜버리는 산후 우울증. 비단 출산 후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남편들도 아내의 출산과 함께 마음의 병을 앓는다. 남편과 아내, 부부의 산후 우울증은 각자 양상이 다를 뿐 근본 원인은 비슷하다. 배우자의 산후 우울증. 그 원인과 함께 예방법을 알아보자.
[아내의 산후 우울증]
몇 주째 웃어본 일이 없는 정소은 씨. 출산한 지 4주, 아기 돌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기지만 만사가 귀찮다. 낮에는 두통에, 밤에는 불면에 시달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
“밤에 잠을 못 자니 낮에는 두통에 시달리고, 하루하루 너무 힘겨워요. 아기에게 모유도 먹이고 놀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매사에 의욕이 없네요. 그렇다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도 의미 없어 보이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정씨처럼 의욕을 상실하고 육아에 지쳐 산후 우울증에 빠지는 여성들. 원인이 뭘까? 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산후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일까?
산후 우울증, 방치하면 가족 관계 치명적
서울의료원 정신과 과장이자 중랑구정신보건센터 신서연 센터장은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경험하는 비정상적인 우울증을 말하며, 산모 10명 중 1명의 빈도로 발생합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다양한 신체적․심리학적․내분비적 영향을 끼치는데 가임기 여성 중 25~30%가 임신 기간 중 우울증 상을 경험하며, 50~80%는 출산 후에 우울한 기분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개 산후 4주를 전후로 발병하지만, 드물게는 출산 후 수일 내 또는 수개월 후에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발병 3~6개월 후면 증상이 호전되지만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증상이 악화되어 1년 넘게 지속되기도 합니다. 심한 상태를 방치할 경우 산모 자신은 물론, 유아의 발달과 가족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라고 말한다.
‘산후 우울감’과 ‘산후 우울증’은 다르다. 신서연 센터장은 명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물학적 원인 외에도 다양한 원인
산후 우울증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에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 출산할 경우 우울증에 노출될 위험률이 50~80%로 높았다. 또 다양한 생물학적 원인도 있다.
“출산 후 임신 유지를 위해 높아져 있던 호르몬의 갑작스러운 감소가 감정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으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양육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 살이 찌고 피부가 늘어지는 등의 신체 변화로 인한 불안감, 피로, 수면장애, 충분치 못한 휴식, 스트레스, 생활상의 변화, 상대적인 소외감 또는 감정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있거나 정서적․육체적 지지 기반이 약한 경우, 평소 월경전증후군을 앓았거나, 임신 기간 중 불안이나 우울을 경험하거나, 갑자기 모유 수유를 중단한 경우, 갑상선 기능 이상이 있거나 양육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 산후 우울증의 위험이 더 높다.
양육 소홀로 아기에게 적대감 갖기도
출산은 여성 고유의 소중한 경험이지만 출산 자체가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상당한 적응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이 출산 후 수개월간 신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부부간의 갈등이 많거나 원치 않는 임신이거나 미혼모, 임신․분만의 문제가 있었거나 하는 등 상황적 원인은 여성의 산후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산후 우울증을 앓으면 아기의 건강이나 사고 발생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거나, 아예 아기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거나 아기에게 적대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남편의 따뜻한 지지 가장 중요해요
아내가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남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여성 스스로 출산 전 교육이나 책을 통해 출산과 양육에 대한 현실적인 부분을 알아두면 좋다. 하지만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남편과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지지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서연 센터장은 출산 뒤 3~10일 정도는 누구나 정상적으로 우울감이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의사의 적절한 평가와 진료가 필요하므로 반드시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산후 우울증은 예방보다 걸렸을 때 빨리 대처하는 게 중요해요. 산후 우울감이 아니라 산후 우울증이라면 전문가의 정확한 평가를 통해 상담 및 정신 치료와 약물 치료 등을 받아야 합니다. 수유 기간이라 약물 치료가 우선적으로 권장되지는 않지만, 우울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일어나고 자살 등 타인이나 본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등 심각한 경우라면 약물 치료와 함께 입원 치료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의 증상을 전문가와의 상담으로 정확하게 진단받는 것입니다.”
Tip 엄마를 위한 방법․
․ 자신의 감정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표현하세요.
․ 친한 사람들과 수다 떨며 스트레스를 풀어주세요.
․ 기분을 좋게 하는 활동에 참가하세요.
․ 배우자를 처음부터 아기 돌보는 일에 참여시키세요.
․ 아기가 잘 때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도록 노력하세요.
․ 해당 지역의 아동 및 가족 보건 간호사 또는 산모 그룹을 잘 알아두어 지원 시스템을 확장하세요.
․ 배우자와 단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구하세요.
[남편의 산후 우울증]
흔히 산후 우울증은 여성들만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들도 산후 우울증에 빠진다. 남편의 산후 우울증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체로 아빠가 되는 나이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시기다. 아직 직장에서의 위치도 불안정하고 맡은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튼튼한 기반이 없어 새로 부양하고 교육시켜야 할 아기를 생각하면 두려움으로 인해 막중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신서연 센터장은 “남편은 아기를 보호하고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따릅니다. 또한 아내도 그러한 남편의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남편은 아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아내와 함께할 시간이 전부 아기에게 쏟아지면서 상실감을 경험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적 특성상 남성은 육아나 아버지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자랍니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조언을 구할 곳이 없어 스스로 아버지의 위치를 터득해야 하는 부담이 크고 하소연할 상대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남편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경제적․정서적 부담에 극단적 감정까지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은 10달 동안 아기와 함께 생활해왔고, 또 육아 정보를 많이 공유하기 때문에 육아에 있어서 남편보다 더 능력을 발휘한다. 아내는 본능적․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육아 모드로 바뀐 상태지만, 남편은 아직 육아를 위한 준비가 미흡하다. 특히 첫아이가 태어날 무렵 남편은 극단적으로 감정이 예민해진다. 첫아이가 태어나면서 그 아이를 어떻게든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남편을 짓누른다. 이때 아이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방법과 절차를 하나하나 습득하기보다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휘둘리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적․정서적 부담까지 커서 감당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남편의 산후 우울증 빨리 알아채는 게 중요
남편의 산후 우울증은 심리적 원인이 크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의 감정을 잘 살피고 칭찬을 많이 해줘서 의욕을 돋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신서연 센터장은 “아내는 남편의 산후 우울증을 빨리 알아채는 게 중요해요. 일과 가정에서 벗어나 남편만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육아에 동참시켜 아이와 친밀해지도록 해서 겉도는 남편을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육아를 남편이 잘하지 못했을 때 겪는 실망감과 부담감은 아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일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잘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육아를 분담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조언했다.
- 눈물이 많아진다.
- 만사가 귀찮고 늘 무기력하다.
- 우울한 기분이 계속된다.
- 지나치게 신경과민이 된다.
- 자신과 아기의 건강에 두려움이 생긴다.
-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다.
- 간혹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
- 시간개념이 불분명해진다.
- 갑자기 기분이 몹시 나빠진다.
- 장래에 대한 비관에 빠져 있다.
- 성적인 관심이 없어진다.
- 잠이 안 와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자주 있다.
- 아기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거나 갑자기 아기가 미워진다.
-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무시한다는 자학 증세가 있다.
-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한다.
- 평소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입맛이 전혀 당기지 않는다.
- 남편 혹은 아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거나 시비를 건다.
-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 가끔씩 숨쉬기가 곤란하다.
- 자주 변덕을 부린다.
- - 0~4개 우울해져도 몇 시간 만에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상황. 이 정도의 증상은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 - 5~10개 하루하루가 초조하게 느껴지는 산모와 남편.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지 말고, 음악을 듣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적극적으로 기분 전환을 꾀하며 극복하는 것이 좋다.
- - 11~16개 비관적인 상태에 있는 경우.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선배나 주위 어른들과 상담하거나 남편과 아내와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자신도 마음을 밝게 하려고 노력한다.
- - 17~20개 노이로제 증상을 갖고 있는 경우. 몸과 마음이 함께 지쳐버리기 전에 의사나 전문가와 상담해 치료하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