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안 된 아이가 곁을 떠났습니다"
세퓨만 사용했다. 육아박람회에서 그렇게 안심하라고 외쳤던 그 상품을 말이다. 육아박람회, 육아카페에서 엄마들을 현혹하던 세퓨 가습기살균제. 사지 말았어야 했다.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제품을 믿고 집에 들였다. 2010년 가을이었다.
“혁신적인 살균방식의 신개념 살균성분 PGH! PGH는 EU의 승인을 받고 유럽 환경국가에서 널리 쓰고 있는 신개념 살균성분입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에는 매우 강력하지만 인체에는 매우 안전한 PGH가 소중한 우리 가족을 감염으로부터 지켜드립니다.”
세퓨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적혀있는 글귀다. 세퓨가 만들어 판 가습기살균제는 육아박람회와 육아카페에서 엄마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유럽에서 온 신개념 살균제’로 엄마들의 입소문을 탔다. 제품을 구입하면 사은품까지 얹어줬다. 갓 태어난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었던 김대원(42·서울 강남구) 씨는 아내와 가습기살균제 ‘세퓨’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김 씨는 세퓨 가습기살균제를 4개월 가량 사용했다. 스틱 형태로 30개가 들어있는 게 한 달분으로 4달 분을 사용한 듯한 기억이 남아있다. 매일 10시간 이상 사용했으니, 120개 정도를 사용한 셈이다.
김대원 씨가 사용했떤 세퓨 가습기살균제 스틱형 제품 모습. 대원 씨는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김대원
“아직 집에 세퓨 2통이 남아있습니다. 세퓨 대표를 만나면 틀어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아이를 잃은 상심에 가습기살균제를 치워버릴 법도 하지만, 아이 아빠는 분한 마음에 버리지도 못했다.
◇ 돌도 되기 전 사망한 첫 아이
아이는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사망했다. 돌도 되기 전 김 씨의 곁을 떠났다. 항상 아이와 같은 장소에서 가습기를 틀었던 김 씨와 아내는 아직 이렇다 할 증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 않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피해증상이 나타날지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남겨두고 있다.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아이 사진. 대원 씨가 아내 몰래 지갑에 가지고 다니는 예안이의 모습이다. ⓒ김대원
아이는 2010년 6월에 태어났다. ‘예안’이라는 예쁜 이름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여름이라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해 가을 무렵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10월 말 즈음으로 기억한다. 주로 저녁이나, 잠을 잘 때 틀었다. 하루에 10시간 정도는 가습기를 기본으로 틀었다. 2011년 4월, 아이를 보낼 때까지 말이다.
2011년 8월 31일. 신생아, 산모들의 원인미상 죽음에 대한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발표가 났다. 김 씨는 그 발표가 그리 놀랍지만은 않았다. 그 전부터 추정은 하고 있었다. 아이의 죽음과 가습기살균제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추측 말이다. 김 씨의 생각에 갓 태어난 아이가 사망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8월 아이의 사망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가 확실 시 됐을 때 기억이 생생해요. 거의 미친 사람처럼 가습기살균제 피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었습니다. 청와대 민원도 넣어봤고, 보건복지부에도 민원 넣고, 공정위까지 안 찾아다닌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언론도 피해자를 외면하기만 했어요.”
◇ 세퓨 피해자, 목소리 내기도 보상받기도 어렵다
김 씨의 힘겨운 싸움은 2011년부터 이어져 왔다. 지금까지 말이다. 진정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과하고 보상을 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운 싸움이었다.
김 씨가 사용한 세퓨는 2011년 폐업했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기업이다. 항의할 곳은 없다. 보상이나 사과를 받을 방법이 불투명한 것이다.
현재 수면 위에 드러난 세퓨 피해자들은 27명. 그 중 사망자는 14명이다. 다른 기업에 비해 피해자 수는 확실히 적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문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피해자들을 대신해 더민주당, 새누리당 의원들을 만나고, 관련 공청회도 참석했다. 있는 기업들도 보상이 어려운데, ‘가해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세퓨 피해자들은 어떡할 것인지’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김 씨는 현재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피해자의 목소리만을 내러 다니기엔 현실적 여건이 따라주질 않는다.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문제 해결을 미룰 수는 없다.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도 여전히 김 씨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라면 시간을 내 가는 편이다.
“세퓨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국가가 어떻게 해줄 것인가.”
새누리당은 늘 이에 대한 답변이 없었다. 지난 13일 본격적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위 활동이 시작되기 전, 피해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서 여당은 처음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들려줬다.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세퓨 피해자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고도 했어요. 구성권을 전제로 해 국가가 보상해주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하더군요. 피해자들이 동일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27명의 세퓨 피해자들 중 14명이 사망, 사망자가 반 이상이다. 생존한 세퓨 피해자들도 정상 폐 기능을 하는 피해자는 드물다. 새누리당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날, 소수의 피해자들도 함께 참석했다. 김 씨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이번 국정조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실낱같은 희망을 담아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 1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위 소속 위원과 만나 요구안을 전달했다. 이날 대원 씨도 참석해 세퓨 피해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더민주당 측도 세퓨 피해자 보상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문제라며 새누리당과 협의점을 찾아 세퓨 피해자들이 소외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가해 기업이 없어 불안해 하던 세퓨 피해자들에게는 어떠한 말보다 반가운 약속이었다.
◇ “이번에도 믿어보는 수 밖엔…”
“이번 국회에 거는 기대”에 대한 물음에 김 씨는 답변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믿어보는 수밖에 없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전달했던 야당의 약속 실천과 예전과 달리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한 새누리당까지, 피해자 입장으로서는 국회 특위 활동이 하나의 희망이 됐습니다.”
현재 대원 씨는 첫째 아이 예안이를 떠나보낸 후 딸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2012년 5월에 대원 씨 부부에게 찾아와 준 쌍둥이 자매.
25주 만에, 그러니까 약 6개월 만에 800g으로 태어난 쌍둥이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주는 모습에 김 씨는 기특하기 그지없다.
대원 씨는 ‘쌍둥이 조산의 원인 역시,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내와 대원 씨도 분명, 아이와 가습기살균제를 함께 사용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대원 씨는 아내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청을 할 계획이다. 아직 드러나는 증상이 없어 등급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조심스럽지만 대원 씨의 아내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첫 아이를, 10개월만에 허망하게 떠나보낸 엄마에게 그 이야기는 금기나 다름 없었다.
“아내는 가습기살균제의 원인이 밝혀진 이후부터 TV를 보지 않아요. 모든 매체를 차단하고 살고 있어요. 가습기살균제 관련 이야기는 일절 듣고 싶지 않아 해요. 아이를 보냈다는 죄책감 때문인 듯 합니다.”
대원 씨 아내에게 예안이는 5년이 지나도, 쌍둥이 육아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도 잊혀 지지 않는 아픔이다. 쌍둥이 자매는 잘 자라주고 있다. 작고 약하게 태어난 아이들이었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고 있음에 아빠 김 씨는 감사하다. 먼저 보낸 아이는 가슴에 묻어야 했지만 말이다.
아이를 지켜주고 싶어 사용한 제품으로 아이를 떠나보낸 아빠는 아이 사진 한 장만을 남겼다. 이 외에 아이를 추억할 수 있는 건 아빠의 기억뿐이다. 덤덤하게 털어놓을 만큼 시간도 많이 흘렀다. 이젠 국가에서, 사회에서 아이 먼저 보낸 아빠를, 아빠의 가족을 지탱해줄 차례다.